2012년 01월 22일
<다시기자다_종로의기적> 서른앓이, 사슴앓이
자다가도 벌떡 깨 안 잔척 전활 받아야 하는데, 안 자다가도 잔 것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게 에러다. 경찰서 로비에서도, 세신실 바닥에서도 누울 공간만 있으면 3초만에 잠이 든다. 하리꼬미 4주차. 크게 물 먹은 것도 없지만 단독도 없고, "능동적으로 마와리를 돌라"는 지적을 받는다. '존재감'이 부족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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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독하게 맞았다. 감기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선 후두염과 비염 진단을 받았다. 푹 쉬고 말을 적게 하란다. 그럴 수 없는 직업인 탓에 조금씩 목이 나아지길, 코를 좀 덜 훌쩍거리기만을 바라고 있다. 몸 상태 때문인지,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헛헛한 마음 때문인지 일에 집중도 못한다. 왜 이 추운 겨울 밤 거리를, 경찰서, 지구대, 장례식장을 그렇게 떠돌아 다녀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이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 기자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욕도 참 많이 먹는다. 나이값을 하라는 얘기부터, 그냥 집에 가라는 친절한 배려까지. '경위서'도 8장이나 썼다. 서러워도, 내 늦은 고민과 선택이 쌓인 결과니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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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여는 자정은 조금 특별했다. 故 김근태 고문의 장례식장에서 새해를 맞았다. 평소 존경하던 분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정치인의 운명이란 게 살아온 길과 상관없이 대중적 인기로만 가름되는 게 안타까웠고, 역사에 한 줌 기여 없이 대중적 인기만 있는 정치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삶을 평가하는 게 씁쓸하고 우스웠다. 접객실 한 켠에서 술에 취해 그의 삶을 되새기는 이들이 있었고, 생전 아무런 인연도 없지만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빈소를 찾은 젊은 부부도 있었다. 난 묵묵히 보고를 했고,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밥으로 세 끼를 해결했다. 2011년의 마지막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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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기자'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뼛속까지 기자'라는 의민데, 생각보다 그 수가 꽤 많다. 취재 열정이 대단하며 전투력이 높다. 딱 봐다 "아, 기자구나" 하는 사람들이다. 며칠 전 타사 기자가 "오빤 참 자유로워 보여"라고 했는데, 이는 난 뼈기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눈에 불을 켜고 사건을 탐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타사 정보보고에 "마와리 도는 건 가장 빡센데, 아웃풋은 없다"고 올라왔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비효율적으로 일한다는 뜻이다. 비생산적인 망상과 과거 후벼파기는 내 취미이기도 한데, 타인의 평가가 그렇다니 조금 아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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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첫날, 아침 6시에 집에 들어와 12시간을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잠깐 눈을 떠 하이킥과 무도 재방으로 허기를 달랜 뒤 우연히 EBS의 학교 관련 다큐를 봤다. 10분 남짓이었는데 '감동적이다' 생각했고, 지난 4주가 더 아프게 떠올랐다.
# by | 2012/01/22 19:07 | 망상,항상,일상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