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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기자다_종로의기적> 서른앓이, 사슴앓이

"종로라인 수습 ooo입니다" 

자다가도 벌떡 깨 안 잔척 전활 받아야 하는데, 안 자다가도 잔 것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게 에러다. 경찰서 로비에서도, 세신실 바닥에서도 누울 공간만 있으면 3초만에 잠이 든다. 하리꼬미 4주차. 크게 물 먹은 것도 없지만 단독도 없고, "능동적으로 마와리를 돌라"는 지적을 받는다. '존재감'이 부족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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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독하게 맞았다. 감기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선 후두염과 비염 진단을 받았다. 푹 쉬고 말을 적게 하란다. 그럴 수 없는 직업인 탓에 조금씩 목이 나아지길, 코를 좀 덜 훌쩍거리기만을  바라고 있다. 몸 상태 때문인지,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헛헛한 마음 때문인지 일에 집중도 못한다. 왜 이 추운 겨울 밤 거리를, 경찰서, 지구대, 장례식장을 그렇게 떠돌아 다녀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이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 기자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욕도 참 많이 먹는다. 나이값을 하라는 얘기부터, 그냥 집에 가라는 친절한 배려까지. '경위서'도 8장이나 썼다. 서러워도, 내 늦은 고민과 선택이 쌓인 결과니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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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여는 자정은 조금 특별했다. 故 김근태 고문의 장례식장에서 새해를 맞았다.  평소 존경하던 분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정치인의 운명이란 게 살아온 길과 상관없이 대중적 인기로만 가름되는 게 안타까웠고, 역사에 한 줌 기여 없이 대중적 인기만 있는 정치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삶을 평가하는 게 씁쓸하고 우스웠다. 접객실 한 켠에서 술에 취해 그의 삶을 되새기는 이들이 있었고, 생전 아무런 인연도 없지만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빈소를 찾은 젊은 부부도 있었다. 난 묵묵히 보고를 했고,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밥으로 세 끼를 해결했다. 2011년의 마지막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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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기자'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뼛속까지 기자'라는 의민데, 생각보다 그 수가 꽤 많다. 취재 열정이 대단하며 전투력이 높다. 딱 봐다 "아, 기자구나" 하는 사람들이다. 며칠 전 타사 기자가 "오빤 참 자유로워 보여"라고 했는데, 이는 난 뼈기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눈에 불을 켜고 사건을 탐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타사 정보보고에 "마와리 도는 건 가장 빡센데, 아웃풋은 없다"고 올라왔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비효율적으로 일한다는 뜻이다. 비생산적인 망상과 과거 후벼파기는 내 취미이기도 한데, 타인의 평가가 그렇다니 조금 아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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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첫날, 아침 6시에 집에 들어와 12시간을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잠깐 눈을 떠 하이킥과 무도 재방으로 허기를 달랜 뒤 우연히 EBS의 학교 관련 다큐를 봤다. 10분 남짓이었는데 '감동적이다' 생각했고, 지난 4주가 더 아프게 떠올랐다.  



by shure | 2012/01/22 19:07 | 망상,항상,일상 | 트랙백 | 덧글(2)

하이라이트



'하이라이트'라는 문제집이 있었다. '정석' '개념원리' 따위보다는 뭔가 세련된 느낌이었고, 핵심만 짚어준다는 말에 인기가 꽤 많았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보면 다른 문제집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학교나 여느 문제집에서 중요하다고 했던 것들을 다시 강조할 뿐이었다. '하이라이트'를 풀다가 9시 50분이 되면 엠비시에서 하던 <스포츠 하이라이트> 를 봤다. 경기 결과도 뻔히 알고 주요 장면만 다시 보여주는 건데도 늘 재밌었다.

나이가 들어도 '하이라이트'를 찾는 습관은 남아 있다. 여신급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케이블 야구 프로그램이 그렇다. 허나 세 시간이 넘는 본 경기는 다르다. 경기가 조금만 지루해져도 채널이 금새 돌아간다. 옆 채널에선 언제나 '하이라이트'급 웃음과 이야기만 모아놓은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뉴스마저도 그날 벌어진 일들의 하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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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미는 인정받아도, 지리하게 늘어지는 건 용서가 안 된다. 단 한 순간도 지루해서는 안 되고, 불필요한 게 끼어들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어쩌면  '하이라이트병'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멍하니 또 하이라이트 프로그램를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울고 웃지만 맥락은 없다. 그냥 재밌으면 좋고 자극적이면 오케이다. 

그런데 그 지루하던 교과서도 사실은 수천년 역사를 수백 페이지에 담은 하이라이트였다. 이 독한 사람들은 그 안에서 또 하이라이트를 찾으려 했다. 지나치게 압축한 탓에 역사를 말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너무 간단해져버린다. 수많은 목숨이 왔다갔다 한 전쟁의 원인과 결과도 시험용 답안으로 깔끔하게 요약되곤 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도, 후에 역사책엔 짧은 챕터 안 몇줄로 정리될거다.  

중요하다는 곳에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칠하고, 동그라미를 그리지만 가끔 중요한 역사는 형광펜 밖에, 밑줄이 없는 곳에 존재할 때도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홈런치는 순간이 경쾌하고 골 장면이 짜릿해도, 승부의 중요한 순간은 득점이 나지 않은 어느 이닝에 혹은 묵묵히 11km를 뛰는 소리없는 영웅의 발끝에서 나오기도 한다. 하이라이트로 묶을라 치면 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이다. 동그라미 치지 않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이를 모르고서는 경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게 스포츠다. 인생도, 역사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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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생각이 왜 들었을까. 이 역시도 '어쩌면 지금이 인생에서 이렇다할 밑줄도, 동그라미도 없는 가장 밋밋한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하이라이트병' 때문인 것 같다.  <하이킥2>의 '이순재 고사'처럼 혹시 가족들이 내 역사를 시험치려는데 "2011년 후반기, 이 페이지는 별 얘기가 없네"라고 그냥 넘겨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같은거다.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나 역시 중증 하이라이트병 환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하이라이트' 참고서와 <스포츠 하이라이트>였다는 게 내 결론이다. 이 글의 하이라이트는 뭘까.  




by shure | 2011/11/07 17:59 | 망상,항상,일상 | 트랙백 | 덧글(6)

"애정남, 난 애매한 것들이 좋다"



    
 "그래서 감독이 말 하려는 게 뭔데" 영화를 보고 나온 여자가 기분이 나빴는지 화를 낸다. 선악의 캐릭터와 주제 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영화에 짜증이 난 모양이다. "말 하려는 게 뭔데" 근데, 영화는 꼭 무언가를 말하려고 만든 예술일까. 그 보다는 관객들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예술이지 않나 싶다. 명쾌한 말은 신문이나 9시 뉴스를 보면 나온다. 기사의 제목이나, 첫 마디가 바로 말하려는 바다. 그 여자에게는 "집에 가서 TV를 켜세요"라고 말하려다 겨우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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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요구하는 '명쾌함'에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인적성 검사라는 것을 볼 때가 그렇다. 질문이란 게 대부분 '나는 oo을 좋아한다'를 묻고는 '예/아니오'로 답하길 강요한다. 모든 상황과 취향에 있어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나로선 난감할 뿐이다.  '인성을 구별하기 위한(?)' 비슷비슷한 질문들에 예/ 아니오를 고루 답하다보면 분열된 자아를 내비치기 일쑤다.

'나는 모임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얼마나 외향적인지를 묻는 것 같은 이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까. 내 취향의,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환영이지만, 무슨무슨 동창회 식의 '살아온 궤적으로 묶여지는' 획일적 모임이 싫다면. 난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싫어하는 사람일까. 

 "지금 200번대 문제를 풀 시간인데, 아직 여기면 안 되죠" 지난 주말에 인적성 검사를 받다가 화가 났다. 내 인성과 적성을 감히 400가지 질문으로 평가하는 것도 싫은데 생각하지 말고 직관대로 찍으란다. 무슨 연구소(?)에서 나와 '과학적임네'라고 뽐내는 그 태도에서 난 왠지 모를 사이비 종교의 아우라를 느꼈다. 그들도 전생과 미래를 얘기하며 꽤나 그럴듯한 근거를 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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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것들은 애매한대로 놔뒀으면 한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모호한 것 투성이다. 따라서 사람도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20대이지만 40대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젊다고 말하기 우습고, 20대 못지 않은 열정으로 뭉친 나이든 청춘에게 물리적 연식을 갖다 붙이는 것도 미안하다. 남녀도 마찬가지다. 남자다운 여자, 여자다운 여자는 갈수록 희소해진다. 100명을 뽑아 XY축 그래프에 옮겨 심으면 단 한사람도 같은 곳에 뿌리내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불완전하고 모호한 남자고 여자다. 

부모님의 고향은 전라도이지만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고, 그 후 10년 가까이를 서울에서 살았다. 친척들은 각 1/3씩 서울, 부산, 전라도에 살고 있다. 그럼 나는 집안의 피를 물려 받은 전라도 사람일까, 태어나 자란 부산 사람일까, 아니면 지금 터전이 있는 서울 사람일까. 이것도 직관대로 찍어야 하는 걸까.  

내 짧은 경험대로라면 사람은,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단순 명쾌한 건 잡스의 디자인이면 족하다)

명쾌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굳이 기준을 나누고, 내것과 네것을 나누는 게 문제다. 생각해보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1%씩도 안 된다. 대부분의 것들은 모르거나, 무관심한거다.

'애정남'에 대세인 시대에 그에 반기를 드는 게 우습지만, 난 세상이 좀 더 모호한 것에 관대해지길 바란다. 1만명이 넘는 질문이 애정남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데, 모든 것에 그렇게 기준이 확실해서야 사는 데 재미가 있겠나 싶다. 정해진 것 하나 없는 모호한 세상에서 모호한 줄타기를 하며 때론 틀리기도, 맞기도 하는 것이 이 모호한 세상을 '사는 맛'이라는 게 29년째 모호한 인생을 살아온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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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여배우와 사귀게 된 남자배우는 "사귀는 건 맞지만 열애는 아니다"는 말로 이 시대 애정남의 표상을 보여줬다. 난 이 친구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좋아하는 것인지, 사랑인지, 열애인지 둘 사이의 관계와 그 안의 복잡한 감정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버렸다. 아마 헤어질 때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서로 좋은 동료로 남기로 했다"고. 감정을 하나 둘씩 지우고 딱 '좋은 동료' 정도로.
 
명쾌한 봄,여름,가을,겨울은 각기 한 달 남짓이다. 나머지 8개월은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느끼는 '애매한' 시간이다.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난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라고 답한다. 옷의 길이와 겹쳐 입는 가짓수마저 모호해지는 그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이 모호한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굳이 나누려고, 기준을 정하려고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by shure | 2011/10/17 21:15 | 트랙백 | 덧글(0)

우주를 그릴 수 있습니까.


 
"우주를 그리세요" 

12년의 초중고 미술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주제는 우주를 그리라는 것이었다. 상상력, 창의력 등을 키워주기 위한 주제였을텐데, 가 보지도 않은 우주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주보다도 커 보이는 8절 스케치북에 이미 친구들은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대부분 ET 같은 외계 생명체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 또래 얘들이 그렇듯 20년 쯤 지난 2011년엔 이들과 만날 수 있을거라는 꿈을 담고 있었다. 외계인을 그리지 않는 녀석들은 지구랑 별 다를 것 없는 배경(산, 꽃 따위)에 우주선을 덩그러니 그리기도 했다. 저게 왜 우주인지, 의아하기도 했다. 
 
고작 열살 남짓,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게 '하늘'인지 '우주'인지, 아직 헷갈릴 때였다. 하늘색과 남색의 경계는 어디부터인지도 알턱이 없었다. 물론 나이가 든다한들 이 경계가 명확해지는 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일단 스케치북을 가득 채우기로 했다. 태양, 달, 지구, 이런 저런 성(星)들을 그린 뒤 이들을 다리로 이었다. 그 위로 차가 다녔다. 이미 존재하는 우주선이나 있을 법한 ET보단, 영원히 불가능할 '다리'를 만드는 게 더 그럴듯해 보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는 모르지만, 행성을 이은 고가도로(?)는 다행히 한 동안 교실 뒤 벽면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렸다. 차별성을 인정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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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화보다 자신있었던 건 정밀한 묘사였다. 중학교 미술시간, 판화 소재를 찾다가 테레사 수녀의 사진을 그리기로 했다. 깊은 주름과 인자한 표정까지 담아야 했기에 그리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었다. 정성껏 원안을 스케치하고 조심스레 고무판을 깎았다. "대단하다"는 친구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미술 선생님의 평가는 냉정했다. '창의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원판의 재현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토록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교육받았건만, 어떤게 좋은 창의성인지 아직 모르겠다. '우주'그림은 창의적이었지만 터무니없었다. '테레사' 판화는 완성도에서 만족했지만 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상력을 요하는 작업은 힘들다는 걸 인정한 게 그 때였던 것 같다. 발명가 과학자 따위의 꿈을 일찍 버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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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우주를 그리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럴때마다 부족한 상상력을 원망하곤 한다. "창의력 학원을 찾아보자"는 웃기지도 않는 말이 농담처럼 나온다. 운이 좋아 우주를 그릴 수 있었지만, 이제 모두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나니 더 힘들어진다.

말이 그렇고 글이 그렇다. 말이 반복되고, 글은 진부해진다. 그걸 피하려 간혹 내 것의 빈 공간에 남의 것을 채워보기도 한다. 베끼는 게 아니라, 닮으려 해본다. 근데 그리 신통치는 않다. 답을 못 찾을 땐 될 수록 '말'을 줄여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얕음'에 몸서리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덮으러 포장까지 하다보면 말이 말을 낳고, 쏟아진 빈컵마냥 입만 벌리고 있을때가 많다.  빈 종이 앞에서 막막해질 때, 핵심을 찌르는 상대에게 답할 말이 없을 때면 다시 먹먹하던 8절 스케치북 앞으로 돌아간다. 무엇으로 채울까, 아니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by shure | 2011/09/13 17:16 | 트랙백 | 덧글(5)

부적응


"전 로즈 마리처럼 되기 위해 방송일을 시작했어요.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려고요"
"아니, 레몬 자네는 재밌고 독특하고 사회적 부적응아였기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된걸세. 게다가 월급도 많기 때문이지. 자네는 로즈마리가 아니라 바로 나같은 사람이야"
 

뒤늦게 <30rock>에 빠졌다. 예쁘게 포장하거나 숨기는 것 없이 현실적이고 적나라해서 좋다. 방송, 인종, 성, 자본 등 모든 편견과 속성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배경은 뉴욕이고, 쇼비지니스 세계가 주 무대다. 그러다 위 대사를 만났다. 극의 주인공이자 연출자인 한 리즈 레몬이 자신의 우상이던 로즈 마리에 대해 얘기하자, 그의 상사인 잭 도너기가 여느 때처럼 정곡을 찌르는 장면이다.

레몬의 꿈도, 잭의 지적도 틀리지 않았다. 본래 품었던 꿈은 그랬을지 몰라도, 정장 그는 재미는 있지만 조직엔 어울리지 않는 타입이라 '부적응'으로 찍혔고, 그러니 돈까지 많이 주는 방송국은 최선의 선택이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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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든, 자신만의 다짐과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다', 좋은 꿈이다. 모든 종류의 예술 활동도 그것이 순수든 상업이든 간에 여기에 속한다. 에술적 재능이 없는 이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예술적 재능이 많이 부족한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 어떤 문제든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보고 듣고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레몬과 같은 꿈을 꾼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잭의 지적이 더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재미나 독특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돈에 대한 욕심 따위는 없다. 그저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부응하지 못한 '부적응'이 절대 이유다. 

'저렇게는 살기 싫어, 그건 아닌 것 같다'며 객관식 문항들을 하나 둘씩 지우다 보니, 막막한 주관식 문제가 돼버렸다. 가만보니 단답형도 아니고 긴 약술이다. 언제나 그렇듯 리드를 쓰는 게 가장 힘들다. 너무 오래, 쓰다 지우다를 반복한다.
 


by shure | 2011/08/30 22:45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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