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 시티:홀>
정재은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열아홉에 본 <고양이를 부탁해>에서였다. 공간의 특성을 발견하고 끄집어내는 감독의 시선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인물이 머무는 곳마다 새겨 넣은 특유의 정서는 흡인력이 강했다. 낡은 교복처럼 벗어 던지고 싶은 인천과 꿈의 한 자락을 얹어 놓은 서울, 주인공 지영의 방에 달린 붉은 색 전구가 떠오르는 인천과 회색 오피스가 숨 막히게 들어찬 서울. 그리고 두 공간을 잇는 지하철 1호선. 각자의 공간엔 졸업 후 뿔뿔이 흩어진 다섯 주인공의 삶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스무 살, 가장 푸를법한 시기를 오후의 나른한 햇살과 밤바다 같은 먹먹한 어둠으로 채우는 시선은 낯설고, 또 신선했다.
7년 전 부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지하철 1호선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영화에서만큼 차갑고 무심한 공간이었다. 시청이나 종로에서 시작해 부천, 인천을 지나다보면 유독 그런 표정의 승객들을 자주 마주쳤다. 서울 근처에선 혜주(이요원)의 욕망이, 구로를 지나 부천, 부평에 오면 탈출구 없는 태희(배두나)나 지영(옥지영)의 무료함이 느껴졌다. 내릴 곳을 놓쳐 제물포나 동인천에서 눈을 뜨면 땅 끝에라도 온 것처럼 먹먹했다. 서울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지하철 1호선은 하나의 산이었다. 쌍둥이 자매의 수다가 들리는 것만 같은 차이나타운, 찬바람이 유독 쓸쓸했던 월미도 역시 영화 속 그대로였다. 인천의 속살을 그만큼 생생히 담아낸 영화는 <고양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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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았던 서울시 신청사 건립과정을 다룬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시티홀>은 장르와 스타일이 다른데도 <고양이…>를 떠올리게 한다. ‘갑작스레 사회로 뱉어져, 아프고 막막한 변두리의 스무 살’, 그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다독였던 것처럼 신청사라는 괴물이 탄생한 과정을 누구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시선을 애써 피한다. 7년, 3000억을 쏟아 부은 준공 과정을 시공사, 서울시, 건축가 등의 입을 빌려 담담하게 전할 뿐이다.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착공을 몰아붙인 전 시장에 대한 비판도 없다. “말을 하려다 멈춘, 고발을 포기한 애매한 다큐”라는 비판은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고발’이 아닌 ‘이해’에 초점을 맞췄기에 오히려 <말하는…>은 더 빛난다. 신청사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은 모두 최선을 다했다. 시공사 삼성물산, 발주처 서울시, 건축가 유걸 대표 모두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다만 그 결과가 ‘광복 후 최악의 건축물’로 꼽히는 현재의 청사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영화는 정치색을 가미한 고발도, 오세훈에 대한 면죄부도 아니다. 그저 공간과 건축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감독이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이다. 12년 전 ‘다섯 고양이의 스무 살은 왜 이렇게 쓸쓸한 걸까’를 인천을 배경 삼아 물었던 것처럼, ‘왜 서울은 이렇게 개발될 수밖에 없을까’라고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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