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2월 04일
영광의 길
적군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진군하는 군인들만 보인다. 날아가는 포탄만 보일 뿐, 적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군인들은 '목표'를 갖고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기 위해 소리치는 것처럼 보인다. 전장의 상황이 전해온다. "모두 부상중입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전해 들은 장군은 움츠려든 우리 쪽 요새를 향해 포를 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현장의 지휘관은 그 명령을 따를 수 없다. 카메라는 철저히 우리 군의 모습만 비춘다. 적의 모습은 단 한 컷도 보이지 않고, 진군과 패퇴를 반복하는 아군 비명만이 담겨있다. 잔인할 정도로 이들을 응시하게 만든다.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영광의 길>의 한 장면이다.
처음부터 무의미한 전투였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병사들은 상부의 지시를 따라 적의 요새를 공격하지만 그것은 고작 '참호 하나를 더 점령하기 위한' 전투일 뿐이다. 전선은 움직이지 않고 미세한 차이의 땅따먹기만 반복되는 전쟁일 뿐이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알지도 못한채, 병사들은 뛰고 또 넘어진다. 프레임 밖에서 날아오는 포탄은 그 발사 주체를 알 수 없어 더욱 두렵게만 느껴진다. 이 '거대한 체스판' 을 움직이는 장군은 불만스럽다. '왜 두려워 하는가' 그는 병사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쓸모없는 병사들을 게임에서 배제시키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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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를 위한 전쟁에 휩쓸린걸까' 영화 속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채 참호 밖으로 내뱉어진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20대의 대부분은 싸움의 이유도 모른 상태로 전선에 섰다. 정신없이 달려가다 보면 적에게 조금이나마 타격을 가할지도 모른다. 표창을 받고 진급을 해, 판을 짜는 장군이 되면 승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장의 어느 곳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 피로 물든 전우의 시체를 많이 보는 것은 '승리의 의 길'에 들어서는 가장 확실한 통행증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고자 하는 이들은 아군을 향해서도 총구를 뿜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땅을 밟을 필요가 없어진다. 쓰러진 동료를 밟고 서면 되기 때문이다. '승리의 길'에 들어섰다는 증거다. 이미 멀어진 우리편 기지는 어떻게 됐을까. 여전히 포격이 가해지고 있다. 병사들이 마지못해 뛰쳐나오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공격을 가하는 것은 또다른 우리 편이다. 애시당초 '적'은 없었다. 적은 전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게임의 조건'일 뿐이다. 장군은 정기적으로 좌표를 일러주면 된다. A 기지에게는 B를 공격하라는, B에게는 A를 공격하라는 것이다. 앉아서 당할 수 없는 병사들이 '보이지 않는 적'을 쫓을 때, 사회는 "활력을 띄고 있다"고 설명된다.
통행증 뒷면엔 병사들이 적어놓은 소원이 적혀있다. 동일한 내용의 '행복의 조건'들이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선 이 모든 전쟁이 불필요하다. "모든 종류의 전쟁에 반대하며, 모든 종류의 살상 무기를 들 수 없다"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이유는 우리 삶의 제1원칙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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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사에 <전 세계 골치 '청년 백수'......>라는 제목이 달렸다.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이 44.5%에 이르고, 유로존은 22.4%, 미국 역시 20%에 육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전쟁에 나선 우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붕괴한 원인을 알고 있었고,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주체를 향해 '돌봄의 미학'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스스로 게임에서 아웃된 젊은이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존재한다. '왜 싸우지 않느냐'는 다그침이다. 고학력 고스펙의 총알을 장전하고, 여느 세대도 누리지 못한 풍요속에서 자랐으면서 무기력하게 총을 내려놓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들려온다. 갖가지 '단기인턴'과 '삽질일자리'로 채워진 '희망(고문)세트'는 아군을 향해 포를 쏘는 장군의 자충수와 닮았다. 장군은 '영광의 길'을 걷기 위해 전투를 이기고 싶지만, 전쟁의 승운은 그와 궤를 달리할지도 모른다.
그 길의 다른 이름은 '공멸의 길' 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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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 '골칫거리'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 죄송스럴 따름이다. 걱정 안해도 된다. 남을 죽이지 않고 사는 법을 찾고 있을 뿐이다. '공생의 길' 이 있다면 그 길을 걷고자 한다.
# by | 2010/02/04 02:58 | 트랙백 | 덧글(1)












